최근에 가장 ‘힙’한 밴드를 물어보면 대부분 ‘잔나비’를 들더군요. 정작 본인들은 ‘힙하다’니 ‘쿨하다’니 이런 말들을 싫어한다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그룹사운드’ 임은 확실합니다. 최근 전국투어 콘서트를 개최하고 인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까지 출연하는 등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인기는 그들의 훌륭한 음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번 2집 앨범 ‘전설’의 타이틀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역시 대형 기획사 가수들이 아니면 진입조차 어려운 음원차트에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인기 뮤지션들과 구분되는 그들만의 음악이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노래에서 가사는 흥행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곡의 첫 가사가 얼마나 인상적이냐에 따라 3, 4여분의 곡에 대한 몰입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곡 처음에 사람의 마음을 책에 비유하는 표현은 서정적이지만 참신하다고 하기엔 그런 류의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읽는다는 표현은 평소에도 많이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곧바로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하고 툭 내뱉은 한 마디가 앞 가사와 함께 엮이면서 매우 매력적인 글귀로 변합니다. 따로 쓰면 그저 그런 말들일 텐데 이렇듯 같이 쓰면 훨씬 좋은, 그저 그렇지 않은 말로 변하는 게 언어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심한 듯 훑고 가라는 그 한 마디가 이 곡을 그저 훑고 갈 수 없게 합니다. 담담하지만 많은 감정을 품고 있는 보컬 최정훈의 목소리가 그렇지 않아도 좋은 이 가사에게 더 힘을 실어줍니다. 이 첫 두 줄의 가사가 4분의 곡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는 셈입니다. 그 뒤에도 ‘갈피를 꽂고선’ 같은 번뜩이는 표현이 곡에 생기를 불어넣어줍니다. 가사 전체적으로 감정의 특별한 고저를 드러내지 않고, 멜로디가 다소 단조로움에도 질리지 않게 하는 이유는 사이사이 숨어 있는 좋은 표현들과 톤을 유지하면서도 적재적소마다 음색과 창법을 살짝 바꾸며 부르는 최정훈의 보컬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사와 보컬의 매력 말고도 이 곡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다양합니다. 이 곡 자체가 4분가량으로 축약된 메들리를 듣는 듯한 다채로움을 갖고 있습니다. 노래의 각 파트마다 메인이 되는 악기가 다릅니다. 베이스 슬라이드와 간단한 기타 아르페지오로 시작한 곡은 노랫말이 들어가며 피아노와 신시사이저가 힘을 보탭니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서로 다른 멜로디로 현란히 연주하는데 난잡하지 않고 적절히 어우러집니다. 곡의 핵심을 차지하는 후렴에는 보컬이 verse 때보다 앞으로 나오고 다른 악기는 뒤로 빠지는 대신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스트링 섹션이 메인을 차지합니다. 2절 verse에서는 악기 구성의 변화는 적지만 1절의 연주를 반복하지 않고 주법을 달리하는 등 단조로움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많이 보여줍니다. 2절 후렴 후에는 새로운 보컬 멜로디와 함께 브라스 섹션이 등장합니다. 보컬과 더불어 곡의 중심을 잡으며 곡의 클라이맥스에 도착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4분 30초도 채 되지 않음에도 마치 6분 이상의 대곡인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악기를 곡 적재적소에 배치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 곡에서 숨은 핵심 역할은 기타인 것 같습니다. 곡의 시작과 첫 verse에서는 앞에 나서지만 그 외의 파트에서는 자세히 듣지 않으면 연주하지도 않은듯 알게 모르게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적절히 톤을 조절하고 반주법도 다양하게 선보이는 등 이 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1절과 2절 후렴 후의 솔로 톤이 기타인 듯 아닌 듯 인상적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기타가 아니라 신시사이저로 생각했지만 계속 들어보니 기타 신스 이펙터로 만든 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타와 마찬가지로 신시사이저도 곡 분위기에 걸맞은 소리만 골라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악기들과 잘 어우러졌습니다. 스트링과 브라스의 배치 역시 다른 악기들과 충돌하지 않고 적절히 안배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잔나비의 작사는 보컬인 최정훈이 전담하지만 작곡과 편곡은 최정훈과 키보드 유영현, 기타 김도형 셋이 함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셋의 재능이 잘 어우러져 이렇게 좋은 곡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포함하여 2집의 다른 곡들 역시 전체적으로 훌륭한 음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보통 2집의 경우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전작보다 못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잔나비는 이 케이스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습니다. 다음 앨범은 이만큼 좋은, 혹은 더 좋은 곡들로 채워지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작사 : 최정훈
작곡 : 최정훈, 김도형, 유영현
편곡 : 최정훈, 김도형, 유영현, 권박사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음
내게 긴 여운을 남겨줘요
사랑을 사랑을 해줘요
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새하얀 빛으로 그댈 비춰 줄게요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
남몰래 펼쳐보아요
나의 자라나는 마음을
못 본채 꺾어 버릴 수는 없네
미련 남길바엔 그리워 아픈 게 나아
서둘러 안겨본 그 품은 따스할 테니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
남몰래 펼쳐보아요
언젠가 또 그날이 온대도
우린 서둘러 뒤돌지 말아요
마주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면서
서로의 안녕을 보아요
피고 지는 마음을 알아요 다시 돌아온 계절도
난 한 동안 새 활짝 피었다 질래 또 한번 영원히
그럼에도 내 사랑은 또 같은 꿈을 꾸고
그럼에도 꾸던 꿈을 미루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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