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리뷰

[공연]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 내한공연 후기

거울속퍼즐 2019. 5. 29. 23:28

5월 20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노엘 갤러거가 ‘live forever’를 불렀다는 뉴스 제목을 봤습니다. 이 곡은 오아시스 해체 후 절대 부른 적이 없는 노래입니다. 한국 팬들이 이 곡을 너무 좋아해서 내한 공연 때마다 가수가 부르지도 않는데도 관객들끼리 부르기로도 유명한 노래죠. 그런데 그 노래를 불렀다니, 속으로 ‘그럴 리가 없는데’하며 클릭해보니 19일 내한 공연에서 첫 마디만 부르고 관객들이 ‘떼창’하게끔 기타로 반주를 해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곡은 서울에서만 연주한다.”라는, 소위 말하는 ‘국뽕’ 차오르는 멘트와 함께 말입니다. 한국 관객들의 ‘live forever’ 사랑은 노엘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이걸 본 저는 단체 카카오톡방에 링크를 올렸습니다. 그랬는데 저번에 ebs 공감 표 주신 형님이 가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농담삼아 ‘표 빼앗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표를 구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공연을 보게 되었죠. 급히 나와서 지하철 역 안에서 편의점 김밥으로 허기를 떼우며 공연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전날에는 음향 문제로 시작이 30여분 지연되었다는데 이를 의식했는지 바로 진행되더군요. 조금 늦는 바람에 첫 곡을 못 듣고 말았습니다.

 

공연은 노엘 갤러거가 결성한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의 곡들과 ‘oasis’시절 히트곡들로 구성되었는데 정말 재밌었습니다. 아무래도 오아시스 공연이 아닌 노엘 갤러거의 공연이기 때문에 원하는 곡들을 전부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셋리스트의 절반 가까이를 오아시스 곡들이 차지했습니다. champagne supernova 같은 곡을 듣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the masterplan’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최고의 b-side 곡이라는 말을 듣기로 유명한 곡이죠. 노엘도 이 곡을 싱글로 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몇 번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부터 셋리스트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2015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도 이 곡으로 피날레를 장식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옛 명곡들을 라이브로 듣는 것 만큼 좋은 것은 별로 없죠.

 

 그렇다고 솔로 곡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취향의 차이 같습니다. 노엘의 솔로곡들을 들어보면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디스코 리듬을 차용하는 등 오아시스 시절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 노엘의 팬들은 대부분 오아시스부터 좋아한 팬들이다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Everybody’s on the Run, AKA… What a Life, If I had a Gun 같은 곡들도 꽤 좋아하는 노래들입니다. 다만 솔로 곡 중에 제일 좋아하는 In the Heat of the Moment를 듣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공연 중에 재미있는 순간들이 몇 있었습니다. Dead in the Water를 부를 때는 관객들이 모두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천천히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live forever’ 떼창이었습니다. 전날 소문을 들은 관객들이 잔뜩 기대를 하고 있자 노엘도 자신이 뭘 부를지 알고 있지 않느냐며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관객들이 신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볼 때마다 새삼 놀랍습니다. 간혹 떼창이 우리나라만 하는 문화인 줄 아시는 분들이 있는데 유튜브에서 각 밴드 콘서트 영상만 봐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서양 사람들도 잘만 같이 부릅니다. 다만 지구 반대편 동양의 한 나라에서, 그것도 관객들끼리 먼저 노래를 불러주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티스트라도 감동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엘이 자주 내한공연을 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에는 거의 매년 오는 것 같더군요.

 

 다른 재밌는 순간은 ‘wonderwall’을 부르기 전이었습니다. 스크린에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 콤파니의 사진을 띄우더군요.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노엘이 맨시티 팬이니까 홍보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콤파니가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 안더레흐트의 선수 겸 감독으로 간다고 발표한 날이었습니다. 노엘은 이 소식을 무려 한국 관객들에게 직접 전해주고 그에게 여태까지 감사했고, 그를 위해 노래하겠다며 ‘wonderwall’을 불렀습니다. 이 장면은 무려 다음날 열린 맨체스터 시티 우승 퍼레이드에 재생되어 수많은 맨체스터 시민들이 한국인들의 ‘wonderwall’ 떼창을 보게 되는 진풍경을 만들었습니다.

 

 앵콜에서의 don’t look back in anger와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를 끝으로 공연은 마무리되었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 느꼈던 것은 코어 팬층이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아시스 시절의 히트곡은 물론 솔로곡들도 전부 따라부르는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전에는 ‘내한 가수들을 감동시키는 한국 관객들~’ 이런 류의 기사를 보면 냉소적으로 반응했는데 가수 입장에서 이런 팬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매우 기쁠 것 같다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분들 덕분에 해외 아티스트들이 별 돈벌이도 안 되는 한국을 자주 방문해주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라이브를 들으니 신나서 오아시스에 대해 더 글을 쓰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