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하비누아주 파란 리뷰
가끔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뒤척이곤 합니다. 보통 이럴 때 어떤 날에는 짜증이 나거나, 이불을 걷어차고 아예 밤을 샌 적도 있죠. 매우 불운한 하루를 보냈던 날에는, 그 불면의 시간은 악몽보다 지독하게 다가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안 그래도 긴 밤을 영겁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별 이상한 피해망상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면 그제야 창밖에 푸른 빛이 드리우고, 새벽이 왔다는 것을 알면서 그때서야 잠을 겨우 청하곤 했습니다.
그 많았던 불면의 밤 중에 들어서인지 하비누아주(Ravie Nuage)의 2집 더블 타이틀곡 ‘파란’은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2집 앨범명이 ‘새벽녘’이어서 그런지 가사가 앞서 언급했던, 잠 못 드는 경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1절에서는 우울한 감정을 조용히 읊조리고 이어지는 2절에서는 옛 기억들을 꺼내며 분위기를 조금씩 고조시켜 후렴에서 터트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이 부분에서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평소에 쓰지 않을 표현으로 강조를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렴에서도 빛 속에 시리게 머물고 싶다는, 잘 못 쓰면 사뭇 유치해질 수 있는 공감각적 표현을 적절히 사용한 것이 좋았습니다.
곡 구성도 가사의 흐름과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곡은 전주(intro)-1절(verse 1)-간주(interlude)-2절(verse 2)-후렴(chorus)-기타 솔로(guitar solo)-브릿지(bridge)-후렴(chorus)-후주(outro)의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서정적인 아르페지오 기타 리프와 피아노 코드 연주로 시작되는 intro는 이 부분만 들어도 매력적일 정도로 훌륭한 화음을 보여줍니다. 1절 후의 interlude는 후렴이나 2절로 넘어가지 않고 intro의 연주를 반복하는 것으로 곡의 속도를 늦추면서 가사와 맞물려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코드 진행이 워낙 좋아서인지 첫 후렴에 진입하기 전까지 진행이 동일한데도 지루한 느낌을 별로 주지 않습니다.
후렴구 역시 곡의 중반과 마지막 두 번 밖에 나오지 않음에도 멜로디가 강렬하여 바로 기억될 정도였습니다. 첫 후렴 후에 바로 이어지는 기타 솔로도 톤과 연주 모두 훌륭하여 곡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데 일조합니다. 마지막 후렴까지 감정을 터트린 후 다시 처음의 간주를 반복하는 마무리까지 수미상관의 형태를 띄는 것도 좋았습니다. 보컬,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의 다소 무난한 구성인데도 허전한 부분 없이 꽉 차게 들립니다. 물론 곡의 중심을 이끄는 보컬 ‘뽐므’의 목소리는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작사를 직접 하셔서 그런지 단어 하나하나에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맑으면서도 깊이 있는 음색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취향의 목소리라 이 곡에 더 빠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담으로, 지난 2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하비누아주의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비누아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지인께서 표를 나눠 주셨기 때문입니다. ‘파란’을 비롯해 이번에 발매되었던 2집 수록곡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공연 후 사인회에서 앨범에 사인을 받았는데 코드 진행을 물어보려다 너무 뜬금없는 질문 같아서 참았습니다. 기타리스트 분께는 기타 솔로 연습하려고 하다가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하니 “그거 쉬운데….” 하셨습니다. 음……. 나중에 카페에 악보를 올려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과연…….
파란 – 하비누아주 (작사: 김지혜 / 작곡: 김지혜, 전진희 / 편곡: 하비누아주)
알 수 없는 슬픔이
날 집어삼킬 때
홀로 방 한구석에
웅크려 앉아
도망치고만 싶어
더 견뎌낼 수가 없어
이런 나
사라져도
스쳐가는 기억
아름다웠던 우리
추억은 찬란하고
나는 바래져만 가
도망치고만 싶어
더 견뎌낼 수가 없어
이런 난
살아낼 수 있을까
새벽 파란빛이
내 방을 물들일 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해
저 빛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시리도록
빛 속에
숨 쉬고 싶어
When dawnlight shines on me
I will find you
When dawnlight shine on us
I will dream with you
새벽 파란빛이
내 방을 물들일 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해
저 빛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시리도록
빛 속에
숨 쉬고 싶어
하비누아주(Ravie Nuage) 소개
프랑스어로 ‘행복한 구름’이라는 뜻을 지닌 4인조 밴드입니다. 멤버로는 전진희(피아노, 리더), 뽐므(보컬), 박찬혁(기타), 심영주(베이스)가 속해있습니다. KBS의 ‘TOP 밴드’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얻었고 2016년 정규 1집 ‘청춘’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음반) 부분을 수상했습니다.